Dolomiti - 알페 디 시우시와 세체다
2026.9.14 ~ 9.15
9.14 — 카레짜 호수와 알페 디 시우시
오늘도 날씨요정 열일 중
우리가 떠나는 이틀 뒤부터 돌로미티는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고 했다.
오늘도 카푸치노로 여유를 부리며 늑장을 부렸다. 어제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줄 몰랐으니 그렇다치지만, 오늘도 늦은 이유는 어제가 너무 힘들었던 탓이다.
그러나 이동거리를 계산해본 결과 오늘의 일정은 그리 빡빡하지 않았다.
룰루랄라 오르티세이로 가는 길에 다시 마주한 Giau Pass
물과 나무와 돌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곳은 카레짜 호수
호수는 정말 작고 아름다웠다. 호수 뒤편으로 무성하게 자란 나무는 가문비나무로, 최고급 바이올린을 만드는 데 쓰인다.
스위스에서 에메랄드 빛 외쉬넨 호수를 보고 나서 다른 호수들은 눈에 차지도 않을 거라고 단정했는데, 역시 나의 여전히 좁고 얕은 시야 탓이다.
열받는 보라색 선글라스ㅎㅎ
마지막 날 가려던 걸 즉석에서 오늘로 당겨버렸는데, 돌아보니 최고의 선택
전 날에 걸었던 4만보의 피로가 아직 가시지 않은 두 여행자
오르티세이로 향하던 길에 포장한 햄버거
채소 한장 넣어주길래 샀는데 맛은 없었다.
오르티세이에 도착하자 한 곳 정도 더 갈 시간이 남았고, 내일의 날씨는 이만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내일 일정이었던 알페 디 시우시로 곧장 향했다.
사진은 알페 디 시우시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세체다 케이블카 길
도착한 알페 디 시우시!!
드넓게 펼쳐진 초원과 멀리 보이는 장엄한 돌산의 이 풍경이 돌로미티에서 가장 좋았다. 하이랄 초원을 익스트림 롱 샷으로 보여주는 젤다의 첫 장면이 떠올랐다. 인상적인 자연을 보면 젤다를 떠올리는 만 28세의 수준 높은 교양
어제의 피로를 다 회복한 재인이형은 가장 뾰족한 돌산에 오르자고 했다.
어제에 비하면 하이킹 레벨 -8단계 정도였다.
기니피그를 관찰 중인 아빠와 아들
탁 트인 이곳에서 걱정 몇 조각 두고 왔다. 한숨 아주 늘어지게도 자봤다.
돌로미티의 야생화는 6-7월에 만개해 9월이면 지는데, 그 중에 드물게 살아남은 녀석들이 종종 보인다.
호수와 같이 바라보는 사쏘룽고와 사쏘피아토
아이슬란드의 베스트라혼 가는 길에 본 풍경이 잠깐 생각났다.
잘 있어라~~ 알페 디 시우시
웨이팅의 지루함도 무색하게 만든 주인 아가씨의 친절함
어제의 피로감이 뒤늦게 몰려왔는지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었다.
쓴 돈
없음= 0원
9.15 — 세체다 하이킹 올데이
어제 장을 보며 기어코 또 요거트를 사놨다. 넓고 좋았던 오르티세이 숙소의 공용주방
아쉬웠던 건 호스트가 분명 주방에 커피가 있다고 했는데 오만가지 서랍을 다 열어봐도 찾을 수 없었던 것
없으면 사먹으면 돼!
이탈리아에서는 모닝 카푸치노를 꼭 마셨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우유 들어간 커피를 보통 아침에만 먹는다고 한다.
심지어 정통 에스프레소바 중에 점심부터는 카푸치노를 팔지 않는 곳도 있다고 한다. 점심 이후에는 우유가 소화를 방해해서라는데, 난 소화가 안된 적이 없었는데…
크루와상에 오렌지 주스까지 곁들이니 제법 현지인 같은 아침
오르티세이 바로 옆의 발 가르데나는 17세기부터 목공예로 유명했다고 한다. 정교하게 깎은 성모상 아래 고양이
그리고 이번 숙소는 세체다 케이블카 바로 옆이라서 차를 두고 걸어갈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의 목적지는 세체다
여기서 하루종일 하이킹 예정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게으름뱅이들이 10시 전에 도착했지만, 이미 케이블카의 대기는 놀이공원 줄만큼 길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세체다의 첫 인상
칼로 베어낸 듯이 뚝 끊겨서 날카로운 절벽으로 떨어진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목초지인데 반대편은 낭떠러지인게 신기!
세체다를 등진 여행자들
확실히 풍경만 있는 게 낫다.
더 넘어가면 세체다 봉우리를 가까이 볼 수 있는데, 사유지라 문지기가 지키고 있다. 저 개찰구를 넘는 게 5유로
우리도 쿨하게 5유로를 냈다.
스냅촬영을 하는 커플
이 분은 드레스를 입고 개찰구를 넘으셨을지, 아니면 개찰구를 넘고 나서 갈아입으셨을지에 대해 토론을 나눴다.
가까이 가도 그렇게 큰 차이가 있었나?
스마트폰과 AI의 시대에 낭만있게 지도책을 고집하던 할아버지. 근시가 다소 심하셨다.
세체다 능선 반대편 하이킹 코스를 따라 조금 오르락내리락하면 멋진 풍경이 등장한다.
탁 트인 곳에 잽싸게 자리를 잡아 눕고 또 20분의 시에스타
목초지 한가운데 신기한 모양의 쌍둥이 바위 두 개
피에랄론지아 옆 목초지에는 동키들이 떼를 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 여유로운 녀석들
순한 이 동키는 지나가던 하이커들이 걸음을 멈추고 쓰다듬어도 꿈쩍 않고 풀만 뜯었다.
피르스트의 바흐알프제 호수에서 본 소들이 떠오르는 풍경이었다. 그 때는 혼자여서 좋았는데 지금은 사람이 많아서 좋아!!
주구장창 내려왔으니까 이제 다시 올라가야하는데, 몇 걸음 못 가 체력의 한계가 왔다.
3일 간 쌓인 피로에 무릎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치만 저 멀리 높은 언덕 위를 향해 1시간을 더 가야만 한다.
유네스코 어쩌구 표시가 있어서 찾아보니 돌로미티는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2억 년 전쯤의 바다 속 산호초가 솟아올라 만들어진 이 돌산은, 산 꼭대기에서 각종 고대 해양 화석이 발견된다.
오면서 지나쳐버린 수많은 산장이 아른거렸는지, 마지막 산장에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술 한 잔 했습니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 마지막 스퍼트로 다시 돌아온 세체다 입구
나란히 피크닉을 즐기던 가족들의 뒷모습이 화목해보였다.
세체다 구경 끝! 때마침 숙소에서 수영장&사우나 티켓을 준다는 걸 알아버렸고, 노르웨이에서 사우나의 맛을 알아버린 나는 예정보다 빨리 내려갔다.
내려가는 케이블카 줄도 아침만큼 길었다.
젤라또의 나라에서 먹은 첫 젤라또
판교 아이스걸 크림보이 1승
나보다 7개월 늙은 재인이형은 더 이상 못 걷겠다며 숙소에서 쉬기로 하고, 나만 수영하러 왔다.
저 큰 풀장에서 혼자 원없이 수영했다. 생각보다 시설도 훨씬 좋아서, 사우나 종류가 무려 10개
물놀이 후에는 피자 먹기
여기 음식 나오는 게 참 느렸는데, 바로 용서 가능한 맛
저 야외 테이블에 세 팀이 주르륵 앉아 40분 동안 맥주만 홀짝였다.
나오자마자 빨리 먹기 대회가 열렸고, 옆 테이블과 서로 힐끔힐끔 쳐다봤다. 서로의 피자를 탐냈던 것 같은데 한 조각씩 쉐어하자고 할 걸 그랬다.
하이킹의 재미를 알게해준 돌로미티의 마지막 날 끝~~
쓴 돈
세체다 케이블카 74 EUR
빵 2.19 EUR= 76.19 EUR (1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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